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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금속제이식의 시공간성과 제작 방식(오강원, 2014, 호남고고학보 48)

kwjs 2021. 2. 9. 20:07

노하심형 이식의 전형 형식, DI-1식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금속제 이식의 여러 형식. *A~C형은 같은 지역의 청동기시대 금속제 이식이 있어 D형부터 분류함.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금속제 이식 여러 형식간의 변천 관계

 

쌍요시 후태평 II구 15호 토광묘 출토 금속제이식 소재 주조 토제용범

 

노하심형 금제이식 금속사의 인발흔과 술꼴장식의 연결 방식

 

환인만족자치현 망강루 적석묘 출토 노하심형 금제 이식

 

길림시 모아산 고분군 출토 은제 이식
집안시 석호 만발발자 적석묘 출토 금제이식

 

 

통유 흥륭산 토광묘 출토 노하심형 이식

 

내가 포자연문화, 그러니까 부여문화의 금은제 귀걸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도 꽤나 오래되었다.

 

포자연문화는 내가 처음으로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인 포자연형호 및 동단산형두와 함께 동병철검, 인상적인 철기군, 한경, 목관묘와 목곽묘, 금은제 귀걸이 등이 인상적인데,

 

중국측에서 일찍부터 유수현 노하심 고분군을 발굴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한 까닭에 부여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 귀걸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부터 늘 의문이 들었던 것은 청동기~철기시대 일반적으로 농경민족은 목에 걸어 가슴을 장식하는 드림장식(수식)은 있어도 귀걸이를 착장하는 문화적 관습이 왠만해서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 전기에는 남자들도 귀걸이를 착용하였고, 삼국시대에도 화려한 금귀걸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의 시기에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귀걸이를 착용하였던 물질적 자료가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부여문화가 형성되면서 금귀걸이라는 전혀 생소한 금속제 장신구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물질 현상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어린 시절부터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이 논문은 젊은 시절의 위와 같은 궁금증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다만 근원적인 궁금증을 풀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에 앞서 철기시대 동북아의 금속제 귀걸이를 분류하고, 시공간성과 문화 관계를 밝히는 것이 더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동북아에서 철기시대 해당 지역의 금속제 이식을 체계화한 최초의 연구이다. 아직 스스로의 의문점을 모두 풀지는 못하였지만, 앞으로 스스로 품고 있는 근원적인 의문이 풀려질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래는 이 논문의 요지이다.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의 금속제 이식은 형태와 제작 방식을 기준으로 할 때 C(환형) 계열 2개식, D(노하심형) 계열 7개식, E(찰뢰락이형) 계열 5개식, F(원판형)I(와형촉각형)7개 형 18개 식으로 나누어진다.

 

C형 계열로는 CI(단원환형식)CII(수향중원환형식), D(노하심형) 계열로는 이식의 중단과 하단에 소형 뉴환이 있는 DI-1(노하심1-1)을 기본형으로 하여 중단의 뉴환이 소형 환형 고리에서 대형 환형 고리로, 하단의 뉴환이 대형 환형 고리로, 그리고 수식이 부가되는 속성 변화에 따른 DII(노하심2)DVI(노하심6)으로, E(찰뢰락이형) 계열로는 D형 속성의 변화 강도에 따른 EI(찰뢰락이식)EII(랍포달림식) 諸式이 있다.

 

이외는 D형을 판상 금속판으로 모사한 F(원판형), 손톱꼴의 G(조형), 휘어진 하키스틱꼴의 H(하키스틱형), 나비 더듬이꼴의 I(와형촉각형)이 예외적인 특수 형식으로 있다.

 

이 여러 형식의 이식은 형태적 속성의 변천 관계 등을 고려할 때, C형 계열은 단원환형식에서 수향중원환형식으로, D형 계열은 DI-1식에서 DVI식과 F식으로, E형 계열은 EI식에서 EII식으로 변천하였는데,

 

EI식은 DIIDV식을 기본형으로 하여 후행하는 시기에 내몽고자치구 호륜패이맹 일대의 집단이 지역적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G형과 H형은 F형이 출현할 즈음 이식 제작 기술의 혁신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으로 창안된 것이고, I형은 기원후 1세기 후엽2세기 전엽 호륜패이맹 일대에서 새롭게 창안된 것이다. 이 가운데 C형은 청동기시대 원환형식에 기원을 두는 이식이다.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의 금속제 이식의 주요한 분포 구역은 내몽고자치구 동북부의 呼倫貝爾盟 일대, 嫩江 유역 중심의 漢書文化圈, 2松花江 중류역 중심의 泡子沿類型圈이다.

 

대체로 기원전 42세기 후엽에는 한서문화권이 분포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가 기원전 1세기에는 요동 북부와 인근의 유적들에 DI-1식이 넓게 분포하는 가운데 한서문화권의 이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기원후 1세기에는 흑룡강성 서부가 이식의 공백 지대가 됨과 동시에 제2송화강 중류역이 중심을 이루고 기원후 1세기 후엽과 그 직후에는 내몽고자치구 동북부에만 이식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기원전 42세기 후엽 중국 동북 지역의 이식 제작은 금속사를 용범에서 주조한 후 열처리 등을 하고 인발기나 단타를 통해 금속사를 조정하는 청동기시대 원환형식 제작 기술만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말1세기 전엽 DI-1식이 창안된 뒤에는 제2송화강 중류역을 중심으로 금속사 꼬기단타 및 오리기 수법이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기원후 1세기에는 DI-1식의 기술과 제작 방식 외에 새로이 판금압출천공소형 원통형 나무막대 감기수식 부가 등의 제작 방식과 기술이 창안되어 적용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기원전 1세기를 철기시대만의 독특한 이식 제작 기술이 확립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