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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구려~고구려 초기의 물질문화와 주변 세계-고분 부장품의 비교를 중심으로-(오강원,2015,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I,한국학중앙연구원)

kwjs 2021. 7. 8. 21:31

환인만족자치현 대전자 대석개묘의 주요 출토 유물

 

 

환인만족자치현 오녀산 II기층 유적과 주요 출토 토기

 

 

고구려 초기 환인현 오녀산 III기층 출토 주요 유물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와 주변 지역의 유사 형식 노야묘-윤가촌식동검

 

 

선고구려 II기 사이장경호의 형성 과정

 

 

서풍현 서차구와 유수현 노하심의 연령병식 동병철검

 

 

환인만족자치현 망강루 적석묘와 유수현 노하심 고분군의 황금귀걸이, 청동팔뚝장식, T자형 유리이전, 철제 차축두 비교

 

 

고구려 초기의 주요 철기와 한나라 화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연구씨리즈에 실린 다른 논문과 관련하여 이 연구를 진행하게 된 오랜 과정과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논문을 바로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고구려 건국 전과 고구려 초기의 고분 부장품, 이 시기 고구려 유물군과 주변 문화 유물군과의 비교를 세밀하게 하여 다 소개하면 복잡할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끄는말과 전제 논문의 요지만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초기 고구려문화 주변의 사회문화적 환경의 역동성은 고구려 건국 전후 이 집단들이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으로 대표되는 한제국의 군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이 군현들과 계속적인 경쟁, 갈등, 교류 속에서 삼국시대 초기문화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고구려 초기문화와 이 문화의 직접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선고구려문화는 주변의 대부분의 지역 문화가 토착적 유물 전통에서 벗어나 한문화 또는 한 중심의 문화로 변모되는 가운데서도 토착문화의 전통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는 그간 고구려 초기문화와 선고구려문화에 대한 연구를 간간이 진행하였던 것이다. 십이대영자문화와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를 연구하면서 환인만족자치현을 중심으로 한 요동 동부 지역의 청동기철기문화를 유형화하여 대이수구유형, 대전자유형, 망강루유형으로 분류하고,

 

혼강 유역 지역문화의 주요 중심지인 통화 시현과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의 청동기초기 철기문화를 개관함과 동시에 전체 유적에 대한 편년안을 제시하였으며, 고구려 초기 적석묘의 형성 과정과 기술 혁신에 따른 묘제와 장법의 변천 과정 및 맥락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분석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이 글 또한 나의 선고구려문화~고구려 초기문화에 관한 기존의 관심과 연구의 연장선에서 작성되어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선고구려문화~고구려 초기문화를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의 고분 등 유적 출토 유물을 주변 문화의 유물과 세밀하게 대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선고구려문화와 고구려 초기문화의 형성 과정과 특질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전체를 간략하게 요지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초기 고구려문화는 기단식 석곽적석묘, 사이장경호, 심발형토기 등으로 상징된다. 그런데 초기 고구려문화의 중심이 형성되어 있던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와 그 주변 지역에서 위의 요소와 연결되는 물질문화는 기원전 21세기 중엽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에 형성되어 있던 망강루유형이 유일하다.

 

또한 망강루유형의 무기단식 반지하묘실적석묘와 사이장경호는 기원전 43세기 환인만족자치현 일대 대전자유형의 묘제(부석이 있는 암광형 대석개묘)와 특정 기종(종향 교상파수부 호)이 변모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글에서는 잠정적으로 환인만족자치현 일대의 대전자유형을 선고구려 I, 망강루유형을 선고구려 II기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볼 때, 초기 고구려문화는 선고구려 I기부터 초기 고구려문화 초기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적인 문화 교류와 융합 및 기술 혁신의 연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고구려 I기는 그 직전 단계의 석관묘직장석기 중심의 문화가 대석개묘, 다인화장, 청동기 중심의 문화로 변모되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데,

 

이러한 혁신과 변모는 환인현 일대의 집단이 혼강과 혼강의 서쪽 지류 부이강 유역을 통해 북쪽의 혼강 상류역 및 동요하 중상류역휘발하 유역 집단과 남북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서, 환인만족자치현 일대 수장층의 적극적인 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선고구려 I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형태의 기술적 혁신은 선고구려 II기에 이르러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포자연문화와 그 주변 지역의 집단이 발달된 청동기와 철기 제작 기술을 소지한 채 환인만족자치현 일대로 이주하여 새로운 수장층을 형성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이주 집단이 토착 집단과 적극적으로 융합하게 된 결과, 기존 대석개묘의 부석이 적석화되면서 무기단식 반지하 묘실 적석묘가 출현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기존의 종향 교상파수부 호가 사이장경호로 변형되어 이 시기 이후 환인만족자치현 일대 토기 조합의 중심 기종이 된다.

 

선고구려 II기 말부터는 이 지역의 새로운 수장층이 기존의 남북을 중심축으로 하는 교류선을 서쪽의 현도군을 중심으로 하는 한군현을 상대로 하는 동서 중심의 교류선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한나라 세력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발달된 한계 철기문화와 기술을 수용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무기단식 적석묘 또한 구조적으로 개선되어 기단식 석곽적석묘로 정형화된다. 이러한 교류와 기술 수용 및 기술의 지역화 과정이라는 연쇄가 기원전 1세기 중엽기원후 1세기 중엽 기단식 적석묘, 소환수철도, 철부, 철삽날, 산형 철촉 등의 초기 고구려문화의 형성으로 귀결되기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