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개형동기에 대한 관심 또한 학문을 시작하던 때부터 줄곧 있었지만, 이 유물에 대한 집중은 청동단검 등에 비해 다소 늦었었다.
다만 한가지 젊을 때부터 늘 의문이 들었던 것은 대전 괴정동 석곽목관묘의 원개형동기를 선학들이 악기이고, 그러하기에 경판 뒷면이 깨어진 채 출토되었다는 해석이었다.
원개형동기가 악기라면 크기로 보아 꽹과리나 징처럼 손에 들고 채로 두들겨야 하고, 손에 쥐기 위해서는 끈을 매달 수 있는 구멍이나 뉴가 있어야 하는데, 손에 쥐고 두들기는 타악기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간에 끈이 있는 안측의 반대편을 두드리지, 끈이 달려있는 쪽을 두드리는 사례가 없고,
또 괴정동 원개형동기가 악기였다면 채로 두드리는 면이 반복된 연주로 인해 두드림흔과 그로 인한 마찰로 주변 경판과 구분되는 마면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괴정동 원개형동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가 아무리 용을 쓰고 관찰해도 그런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오래된 궁금증은 30대부터 40대까지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또 하나의 의문점과 복합되 이후로도 오랫 동안 틈나는대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의문점이란 심양 정가와자 6512호 목곽묘의 피장자 우측에 원개형동기를 좌우 끝단으로 하고 그 안에 중형의 경형동기 2점이 한곳에 마치 무언가에 꿰어져 있었던 듯 일열로 배치되어 있는 유물군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거울류의 기능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신체나 머리 윗쪽을 벗어나 이 자리에 구분되어 부장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점들은 마침 함평 상곡리 석관묘에서 경형동기가 출토된 것을 계기로 더욱 생각을 조직화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청동기학보"에 경형동기를, "석당논총"에 원개형동기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정가와자 6512호 목곽묘에 피장자 신체, 피장자 머리 윗쪽 부장함과 구분되어 측신의 이층대에 셋트를 이루어 부장되어 있는 문제의 거울류는 배면 뉴에 횡목을 걸쳐 놓았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다는 점과 표본의 크기 등을 고려하여, 수장이 타고 다니던 수레 앞면을 장식하던 위엄구였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같은 무덤에 역시 피장자의 신체 등과 구분되어 수레 앞면을 장식한 거울류 셋트와 근접하여 배치되어 있는 또 다른 경형동기 4점은 수레를 끌던 네 마리 말의 가슴을 장식하던 마구류였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요령 지역의 물질문화를 요서 지역은 십이대영자문화 왕팔개자유형, 십이대영자유형, 남동구유형, 동대장자유형으로, 요동 지역은 각각 요동 북부, 요동 남부, 요동 남단, 요동 동부로 나누어, 요동 남단의 경우 강상문화, 윤가촌유형으로 유형화하고, 각 유형의 명칭과 시공간 등을 밝힌 것은 내가 처음이다.
편년체계 또한 위의 유형화에 맞추어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누었는데, 십이대영자문화를 기원전 9~4세기로 편년한 것도 본인이 처음이었다.
근 10년간 이러한 아이디어, 논의, 유형화, 명칭, 편년 등을 문장 서술만 바꾼 채 인용없이 또는 왜곡된 인용으로 꾸준하게 도용하는 연구자가 있는데-나증에 어떻게 하려고 왜 그런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너무 대놓고 도용과 표절 행위를 하고 있음-, 얼마전 우연히 보니 정가와자 6512호 목곽묘의 피장자 신변에 있는 원개형동기 등은 거마구류라고 은근슬쩍 또 뺏기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과 해석은 오직 이 원개형동기 논문과 경형동기 논문에서 내가 처음으로 분석한 글이기에 쉽게 눈에 띠었다.
아무튼 요지는, 원개형동기는 뉴 위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할 때, A형(中心鈕型), B형(中緣鈕型), C형(邊緣鈕型)으로 대분류되는데, A형은 기원전 9~7세기 노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하가점상층문화권과 십이대영자문화 노호산하 유역권, B형은 심양시 일원의 정가와자유형, C형은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고,
원개형동기가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문화 노호산하 유역권에서는 동경보다 한 등급 낮은 의기이자 위세품으로 수장층의 요대에 착장되어 사용되어졌고, 정가와자유형에서는 의기류에서 탈락되어 수레 전면 난간에 착장되어 있는 고급 수레장식품으로 사용되어졌으며, 괴정동유형에서는 신성 공간의 수직 벽체에 걸어 놓고 경배하는 의기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이러한 변천은 각 청동기사회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의 변화에 따른 것인데, 괴정동유형은 그 직전까지 청동기가 희소하였던 까닭에 정가와자유형의 일부 청동기를 의기화하는 가운데 원개형동기 또한 의기화된 것으로 보았다.